여름 과일이 담긴 광주리

A Basket of Summer Fru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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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by 가이 다벤포트 Guy Davenport
Translation by 박상미 Mimi Park

음식을 마련해서 음식을 먹기까지 그 사이에 시간이 있다. 음식이 어딘가에 놓이는 시간이다. 닭장에서 꺼내와 부엌 사이드보드에 올려 놓은 계란이나(호레이스가 살던 때의 투스카니나,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사우스 캐롤라이나, 요크셔어, 노르망디에서) 과수원에서 따온 사과와 배, 강에서 잡아온, 줄로 엮은 물고기들, 군데군데 피가 묻은 자고새 한 쌍, 정원에서 따온 호박과 콩이 담긴 바구니. 이들을 가르켜 17세기 중반 네덜란드 인들은 “정물 still life”이라고 이름 붙였다.

Paul Cezanne,  Still Life with Kettle, 1869
Paul Cezanne, Still Life with Kettle, 1869

A. P. A. 보렌캠프*는 네덜란드 정물화의 역사에 대한 글에서 이 단어가 화가들이 사용하던 직업적 용어에서 왔다고 말한다. 즉 레벤leven, '살아있는' 이라는 뜻의 이 단어는 실제 모델을 앞에 놓고 그린 그림을 가리킬 때 쓰는 말로, 브라우벤레벤vrouwenleven[woman's life] 은 여자 모델과 포즈를 취할 때 이따금씩 움직여야 하는 모델을 뜻하고, 스틸레벤stillleven[still life]은 과일이나 꽃, 물고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대상을 가리킨다. 이는 화가들과 딜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였다. 르네상스 네덜란드에는 정물화를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많았는데, 이들이 사용한 용어들은 다음과 같았다.

*알폰수스 페트루스 안토니우스 보렌캠프 Alphonsus Petrus Antonius Vorenkamp(1898-1953)
네덜란드 태생의 미술사학자.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 스미스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쳤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후에는 로테르담 등에서 미술관 관장을 지냈다.

아침식사나 간단한 스낵을 가리키는 온트비트 ontbijt[breakfast]*, 네덜란드인들이 연회 뿐 아니라 가득 쌓아놓은 갖가지  페이스트리들을 뜻할 때 사용하는 방켓banket[banquet], 초오서가 '에피쿠로스의 진정한 아들 (Epicurous owene sone)'*이라고 부른 자유 지주(The Franklin)의 화려한 식탁을 가리키는, 호화로운 프롱크스틸레벤pronkstillleven [ornate still life]*이라는 말도 있다.

 

*영어로는"breakfast paintings즉 "아침식사 정물화"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주로 몇 가지 사물과 음식들로 구성된, 간소한 정물화를 가리킨다. 과식이나 호화로운 생활을 삼가고 검소함을 추구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전체 서시General Prologue'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는 캔터베리 성지로 떠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소개되는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이 인물들 중 향반이라 번역되기도 하는'Franklin'는 중세 시대 납세 의무 없이 토지를 소유한 자유인들을 말한다. 이들의 중요한 사회적 역할 중 하나가 접대였고, 언제나 음식을 준비해두고 언제라도 손님들이 오면 접대가 가능했다고 한다.

*호화로운 정물이라는 뜻으로 네덜란드 정물화의 한 종류. 방켓과 겹쳐서 분류되기도 한다. 한 화면에 많은 종류의 정물이 들어가는 그림으로, 화면이 이들로 가득차고 화려해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17세기 중반부터 특히 유행했다.

그의 빵, 그의 맥주는 언제나 훌륭했다
그보다 더 좋은 와인으로 가득 찬 셀러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그의 집은 음식과 파이가 모자라는 적이 없고
언제나 생선과 고기로 가득했다
음식과 술로 눈이 내리는 듯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진미로 그러했다
그는 한해 다양한 계절에 따라
점심을 바꾸고 저녁을 달리했다
새장에는 통통한 자고새가 풍성했고
연못에는 도미와 강꼬치 고기가 그득했다
소스가 톡 쏘게 맛있지 않으면 요리사는 걱정이었고
모든 게 그의 입맛에 맞도록 준비되었다
식당에 있는 그의 식탁은
하루종일 그를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Chardin, Jean-Baptiste-Siméon Chardin, Still Life with Partridge and Pear, 1748
Chardin, Jean-Baptiste-Siméon Chardin, Still Life with Partridge and Pear, 1748

앞으로 살펴 보겠지만 프롱크스틸레벤은 키이츠가 "세인트 아그네스의 저녁The Eve of St. Agnes"에서 묘사한 것처럼 호화로운 것일 수 있고,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파티처럼 즐거운 것일 수 있고, 토마스 러브 피콕이 묘사한, 에피큐리언인 대지주와 기인들의 대단한 상차림처럼 코믹할 수도 있다. 또는 조이스의 "죽은 이들The Dead" 이나 에드가 앨런 포우의 작품들처럼 정교한 상징적인 목적을 가진,  홀바인의 "대사들"이나 뒤러의 "멜랑콜리아"에서 보이는 철학적이고 시적인 종류의 상징물들이 등장하는 프롱크스틸레벤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짚고 가야 할 것은 테이블에 차려지는 식사의 형태로서 에피큐리언의 역사이다. 에피큐리언의 식사란 역사적으로, 놀랍도록 절제된 생활을 하는 철학자의 간소한 식사를 말한다. 지금 우리도 할 수 있을 에피큐리언의 식사-염소 치즈와 빵, 그리고 차가운 샘물-는 아마도 밀턴의 유명한 야식인 파이프 담배와 차가운 물 한 잔과 비슷한 정도의 식사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에피큐리언' 이라는 말은 그 이름에서 기원한, 지금도 사용하는 아랍어인 '비큐로스(특히 모로코인들과 영국 성공회 목사들이 사용하던)'가 가진 의미, 즉 고급스런 생활과 호화로운 음식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Pieter Claesz, Still Life, 1629
Pieter Claesz, Still Life, 1629

정물화는 역사적으로 두 시발점을 갖는데, 하나는 이집트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이다.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내려오는 두 가지 주제가 여기서 확립되었다.

고대인들은 죽은 자들에게 음식을 바쳤다. 고대의 무덤 속에선 접시와 단지가 발견된다. 이집트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오래 전부터 자손들은 돌아간 부모에게 경건하게 음식을 바쳤다. 영혼, 카 ka가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나타내는 상형문자는 팔을 치켜든 모습으로, 이는 선사시대부터 숭배를 나타내는 제스처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선조에게 실제 음식을 바칠 가족이 없을 때, 무덤 벽에 음식 그림을 그려서 영혼이 오시리스*에게 재판을 받는 날까지, 시간이 멈출 때까지, 그리고 구원된 이집트의 영원한 7월에서 영원히 살 수 있을 때까지 그 그림 속 음식으로 연명하게 하였다.

*오시리스는 고대 이집트의 죽음의 신, 또한 부활과 풍요의 신이다. 이집트의 "Book of Coming Forth by Day"는 미라와 함께 매장하는, 보통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라 알려진 문서로, 파피루스에 상형문자 등으로 기록한 사후세계에 대한 안내서이다. 사람이 죽고 나면 죽음의 신인 오시리스에게 재판을 받았는데, 이때 영원히 사후 세계에서 살 수 있을지 결정된다.

 

 

 

Adriaen van Utrecht, Banquet Still Life, 1644
Adriaen van Utrecht, Banquet Still Life, 1644

나는 이것이 정물화의 진정한 기원이라고 본다. 음식의 그림이 어떤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완전히 원시적이고 태고적인 생각. 신석기 시대의 동굴 벽화들은 이와 비슷한 생각에 기초하고 있을 텐데, 대부분이 동물을 그린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이론들은 모두 말이 된다. 즉 생식력을 높이기 위해 동물의 이미지를 대지의 자궁에 그렸다는 이론이나, 이미지는 실제 동물을 나타내어 그림에서 동물을 베는 장면은 실제 동물을 베게 만든다는 것이나, 더 흥미로운 이론으로 그림은 이미 죽은 동물들을 다시 살리는 행위로, 신에게 우리가 살기 위해 죽이고 먹어야 했던 동물을 바친다는 뜻이 담겨있다는 이론이 그것이다.

음식을 그리는 행위에 대한 진실이 무엇이든간에 몇 천 년에 걸쳐, 문화에 따라 그 추론은 계속 변해간다. 프란츠 카프카는 이런 우화를 들려준다.

표범이 사원으로 들어와서 제단에 놓이는 단지에 담긴 찌꺼기를 먹는다. 이는 계속 반복되고, 결국 사람들은 이를 미리 생각해 놓게 되고 이는 제사의 일부가 된다. 

정물화를 공부할 때 우리는 제사의 일부가 된 표범까지 미리 생각해 놓아야 한다. 정물화는 4천년 넘게 이어져 왔고 이 한 분야만을 위한 학문이 생겨도 될 정도다. 초상화는 성했다가는 쇠하고, 또는 금지되고, 또는 그 가치를 잃기도 했다.(우리 시대에 그러한 것처럼) 파우사니아스*는 그리스를 묘사할 때 초원이나 나무, 강둑이나 산의 모습은 한 장면도 묘사하지 않았다. 정물화를 제외한 회화의 모든 장르는 꾸준히 지속되지 않았고, 표현적인 예술 중에 오직 서정시나 노래만이 고대부터 남아 있는 우리 문화의 일부이다.

정물이 소재로 자리잡기 시작한 또 하나의 시발점은 아모스서에서 나온다. 기원전 8세기 선지자였던 아모스는 여로보암 2세와 동시대 인물이었다. 그가 다스리던 이스라엘 왕국이 혼란에 빠지고 붕괴될 무렵 무화과 나무를 돌보는 과원지기이자 양치기였던 아모스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는다. 아모스서 8장 1-2절을 보면 이렇다.

*그리스 2세기 경 여행자, 지리학자. 그가 그리스를 직접 돌아다니며 쓴 <그리스 이야기>는 고전 문학과 현대의 고고학을 연결짓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이와 같이 보이셨느니라, 보라,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이니라.  
그가 말씀하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이르되 여름 과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한 손에 머리를 괸 채 생각에 빠져있는 천사의 모습은 전통적으로 멜랑콜리를 나타내는 포즈이다. 그림 속 정물은 르네상스 예술가의 과학적, 창조적 소명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형태의 물건들(다면체, 구), 기구나 도구들(저울, 대패, 못 등) 그리고 멜랑콜리를 상징하는 물건들, 사다리, 모래시계, 열쇠와 주머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Albrecht Dürer, Melancholia I, 1514,

*한 손에 머리를 괸 채 생각에 빠져있는 천사의 모습은 전통적으로 멜랑콜리를 나타내는 포즈이다. 그림 속 정물은 르네상스 예술가의 과학적, 창조적 소명을 상징하는 기하학적 형태의 물건들(다면체, 구), 기구나 도구들(저울, 대패, 못 등) 그리고 멜랑콜리를 상징하는 물건들, 사다리, 모래시계, 열쇠와 주머니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킹 제임스 번역본에는 여백에 이런 해설이 적혀있다."여름 과일 광주리는 이스라엘의 종말이 가까워왔음을 보여준다."

헛되고 헛되도다,  죽음을 기억하라(Vanitas vanitatem and memento mori): 정물은 하나님의 자애로움과 자연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동시에 우리 삶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상징하게 되었다.

아모스는 말한다. "이 말을 들으라. 가난한 자들을 삼키고 땅의 힘없는 자들을 망하게 하려는 자들아, 너희가 이르기를, 월삭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작게 하고, 세겔을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힘없는 자들을 사며 신 한 켤레로 가난한 자를 살꼬…?"
여름 과일 광주리의 비전에 더하여 주 하나님은 다림줄로 만든 벽에 자신의 일부를 더한다. 그의 손에 들린 다림줄이 그것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다림줄은 anakk, 슬픔은 anaqah, 여름 과일은 qayits, 종말은 qaits이다. 우리는 아모스의 수사처럼, 정물화도 언어 유희와 이중 의미를 좋아한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여름 과일 광주리가 주는 은총의 반대가 욕심과 탐욕과 이기심이라면 아모스는 아모스서 마지막에서 가장 아름다운 과장법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만약 두 사람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조화로울 수 있다면, 인간과 하나님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면 어떨지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다.

여호와가 말씀하시길 보라, 그 날이 올지니, 그때 파종하는 자가 곡식 추수하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이 달콤한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이 녹으리라. 그러면 내가 내 백생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들을 가꾸고 그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들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하리라. 이것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즉, 광주리는 다시 여름 과일로 가득찰 것이다. 우리는 로마가 최고로 질서 잡히고 그 위풍을 자랑할 시기에 그 모자이크에서 사과와 배와 무화과로 가득한 광주리를 볼 것이고, 네덜란드가 스페인을 몰아내고 삶의 질을 최고로 추구할 무렵, 정물화가 전례없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거기서 여름 과일 광주리를 볼 것이다. 미국의 19세기 회화에서 보이는 정물화는 대지의 풍요로움을 기념하는 것이다.

 

Between the gathering of food and its consumption there is an interval when it is on display. To this arrangement of eggs on the sideboard, as may be, brought in from the henhouse (in Tuscany in the time of Horace, in the South Carolina of my childhood, in Yorkshire, in Normandy), apples and pears from the orchard, a string of fish from the river, a brace of partridges flecked with blood, a basket of squash and beans from the garden, the Dutch gave the name still life around the middle of the seventeenth century.

 

 

xA. P. A. Vorenkamp tells us in his history of Dutch still life that the word comes from the jargon of painters: leven, "alive," for drawings made from a model. A vrouwenleven was a female model, and one who, from time to time, while posing, needed to move; a stillleven-fruit, flowers, or fishremained still. This was a general term, used by painters and dealers. People who fancied still life for their walls, of whom there were more in Renaissance Netherlands than at any other time in history, used such designations as ontbijt, breakfast or snack; banket, by which the Dutch mean not only our banquet but a copious array of pastries; or the sumptuous pronkstillleven, an ostentatious table such as Chaucer gives the Franklin, who was "Epicurus owene sone":

George Flegel, Still Life, 1625–30
George Flegel, Still Life, 1625–30

 

His breed, his-ale, was alweys after oon;
A bettre envyned man was nowher noon.
Withoute bake mete was nevere his hous,
Of 6.ssh and flessh, and that so plentevous,
It snewed in his hous of mete and drynke,
Of alle deyntees that men koude thynke.
After the sondry sesons of the yeer,
So chaunged he his mete and his soper.
Ful many a fat partrich hadde he in muwe,
And many a breem and many a luce in stewe.
Wo was his cook but if his sauce were
Poynaunt and sharp, and redy al his geere.
His table dormant in his halle alway
Stood redy covered al the longe day.

 

The pronkstilllevenas we shall see, can be used to voluptuous ends, as by Keats in "The Eve of St. Agnes," or to joyous ones, as with Dickens's Christmas feasts, or comic ones, as with the grand spreads laid out by Thomas Love Peacock's epicurean squires and eccentrics, or to elaborately symbolic ends, as with Joyce in "The Dead" or Edgar Allan Poe-with another kind of pronkstilllevenof philosophical and poetic emblems such as we find in Holbein's Ambassadors and Durer's Melencolia

 

Page from the Book of the Dead of Ani, c. 1275 B.C.E., 19th Dynasty
Page from the Book of the Dead of Ani, c. 1275 B.C.E., 19th Dynasty

Epicurean, let us note, has its own history as a kind of table fare. Historically it should mean the simple meal of a philosopher of admirable restraint: an actual meal of Epicurus comes down to us-goat cheese, plain bread, and a pitcher of cold spring water-equaled, perhaps, by Milton's heroic late-night refreshment of a pipe of tobacco and a glass of cold water. But "Epicurean" turned into the sense the Arabic word from which his name derives still has, bikouros (especially used by Moroccans of the Anglican clergy), high living and rich eating.

 

Still life begins in history at two points, in Egypt and in Israel, establishing two themes that will persist in unbroken tradition until our time.

 

Primitive peoples feed their dead. In the most ancient of graves we find dishes and cruses. From the earliest times that we know of in Egypt, food was given by pious offspring to their deceased parents: the kaor soul, could eat. Its hieroglyph is that prehistoric and lasting gesture of praise, uplifted arms. And when, after a long time, there was no more family to feed actual food to an ancestor, there was a picture of a meal painted on the tomb wall, and the ka could survive on that until the coming forth by day, of Osiris, when time will stop, and the righteous dwell forever in the eternal July of the redeemed Egypt.

Still-Life Found in the Tomb of Menna, 15th century BCE
Still-Life Found in the Tomb of Menna, 15th century BCE

That, it seems to me, is the real root of still life-an utterly primitive and archaic feeling that a picture of food has some sustenance. Something close to this idea must have been behind the neolithic cave paintings, which almost invariably depict animals. All the theories make sense: that these animal images were drawn in the earth's womb to enhance fertility; that the image was identified magically with the animal, and that to slay the image would ensure slaying the animal; or a more engaging theory, that the images were restorations of slain animals, an offering to some god of a replacement of a part of his creation that we, to stay alive, have had to kill and eat.

 

Whatever the truth of picturing food, the reasoning will have transmuted, culture by culture, over the millennia. Franz Kafka tells us this parable:

Leopards break into the temple and drink to the dregs what was in the sacrificial pitchers; this is repeated over and over again; finally it can be calculated in advance, and becomes a part of the ceremony.

 

Magura Cave(Bulgaria), BC 6,300-BC 3,000
Magura Cave(Bulgaria), BC 6,300-BC 3,000

In the study of still life, we must be prepared for leopards that have become a part of the ceremony. Still life persists for four thousand years, and deserves study for that alone. The portrait arises and falls away, or is forbidden, or loses significance (as in our times). Landscape is intermittent-we rarely find it even in descriptions. Pausanias described Greece without a single view of meadow or wood, riverbank or mountain. All the genres of painting except still life are discontinuous, and only the lyric poem, or song, can claim so ancient a part of our culture among the expressive arts.

 

The other beginning of still life, as a subject, is in the Book of Amos. A prophet of the eighth century B.c., Amos was a contemporary of Jeroboam the Second (783-741), after whose reign the kingdom of Israel fell into confusion and collapse. Amos, a dresser of sycamore trees and shepherd, was given a vision by God. At Amos 8:1-2,

Thus hath the lord GOD shewed unto me, and beholde, a basket of summer fruit. And he said, Amos, what seest thou? And I sayde: a basket of summer fruit. Then said the LORD unto me, The ende is come upon my people of Israel; will not again pass by them any more.

The King James translators put as their rubric in the margin: "By a basket of summer fruit, it is shewed the propinquitie of Israel's end."

 

Vanitas vanitatem and memento moria still life becomes a symbol of what we shall have taken from us, though at the moment it is a sign of God's goodness and the bounty of nature.

 

"Hear this," said Amos, "O ye that swallow up the needy, even to make the poor of the land to fail, saying, When will the new Moone be gone, that we may sell corne? and the Sabbath, that we may set forth wheat, making the ephah small, and the shekel great, and falsifying the balances by deceit? that we may buy the poor for silver, and the needy for a pair of shoes … ?"

 

To the vision of the basket of summer fruit the Lord adds one of Himself upon a wall made by a plumb line, with a plumb line in His hand.

And the LORD said unto me, Amos, what seest thou? And I
sayd, a plumbline. Then sayd the Lord, Behold, I will set a

plumbline in the midst of my people Israel, I will not again
pass by them any more. And the high places of Isaac shall be
desolate, and the Sanctuaries of Israel shall be laid waste: and
will rise against the house of Jeroboam with the sword.

 

Plumb line, anakkgrief, anaqahSummer fruit, qayitsan ending, qaitsWe shall see that the still life likes puns and double meanings, as in Amos's rhetoric.

 

If greed, rapacity, and selfishness are the opposite of the grace of a basket of summer fruit, Amos gives us one of the most beautiful of hyperboles at the end of his book, where he describes what might be, if two walk together and be agreed, and man and God walk together.

Behold, the daies come, saith the LORD, that the plowman
shall overtake the reaper and the treader of grapes him that
soweth seede, and the mountains shall drop sweet wine, and
all the hills shall melt. And I will bring againe the captivitie of
my people of Israel; and they shall build the waste cities and
inhabit them; and they shall plant vineyards, and drink the
wine thereof; they shall also make gardens, and eat the fruit
of them. And I will plant them upon their land, and they shall
no more be pulled up out of their land, which I have given
them, saith the LORD thy God.

 

That is, the basket will again be full of summer fruit. We can see that basket-filled with apples, pears, and figs-in Roman mosaics when the empire was at its most orderly and majestic; we can see it in the great renaissance of still life in the Netherlands after the expulsion of the Spanish and while the Dutch were refining the art of living to a high degree. We can see it in nineteenth-century American painting as a celebration of the land's goo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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